가장 오래된 과제

개요

‘대지의 공동체’에 뿌리를 둔 문화를 향하여

이 책은 미국의 자연 보존주의자 알도 레오폴드(Aldo Leopold)가 “가장 오래된 과제”라고 말했던 것, 즉 어떻게 하면 땅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땅 위에서 살아갈 수 있는지를 다루고 있다. 
인간은 전체 생명 공동체, ‘대지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이 과제를 감당해야 하며, 실제로 그것은 끊임없이 땅의 이용과 남용을 면밀히 구분하는 선을 그으면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제를 감당하는 데 근대는 총체적으로 실패했다. 저자는 근대 문화에 대한 근원적 비판을 통해 그 실패의 이유를 찾으며, 동시에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과 기후변화, 곳곳에서 들려오는 재난의 소식은 전 지구적 생태적 재앙의 시대에 이미 돌입했다는 두려운 현실 앞에 우리를 세운다. 여기저기서 기후변화의 시계를 되돌릴 수 있는, 아니 최소한 늦추기라도 할 수 있는 시점이 이미 지났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저자는 생태 위기에 대한 인식이 이미 최고조에 달했을 2017년에 이 책을 냈지만, 책에서는 별로 긴박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한가하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법학 전공자답게 저자는 꼬장꼬장 아주 천천히 하나하나 문제를 짚어 나간다. 저자는 흔히 그러듯이 생태 위기의 객관적 증거가 되는 현상들을 나열해서 긴박감을 조성하려 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런 경향을 피한다. 환경 운동이 위기 상황으로부터 곧바로 원인 분석, 해결책으로 넘어가는 경향을 오히려 비판적으로 보는 것 같다. 문제의 원인은 더 깊은 데 있다는 것이다.
 
생태 위기는 문화의 문제다
저자는 생태 위기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규범적 가치의 문제, 넓게 말해 문화의 문제로 보고 있다. 데카르트 이후의 합리주의 철학을 비판해 온 생태 철학의 흐름이 있지만, 저자는 그러한 철학적 성찰을 정치 사회 경제적 맥락과 관련시켜 그 실질적 의미를 밝히며, 근대 문명 전체를 비판적 성찰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래서 매번 계몽주의로부터 초기 자유주의 사상, 오늘날 미국을 중심으로 한 극단적 시장 자본주의경제와 시민운동까지 넘나들며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이런 저자의 종합적인 글쓰기 방식은 급한 길을 둘러 가는 것 같지만, 읽고 나면 우리 삶의 실상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저자는 우리가 하는 행동의 특징을 피상적으로 나열하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어째서 근대 세계가 이렇게 돌아가는지, 우리는 어째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지 근대의 필연성을 밝힌다. 우리가 근대의 미덕이라고 칭송해 마지않는 것들로부터 어떻게 근대의 독이 퍼져 나가는지 그 과정을 밝힌다. 그럼으로써 결국 문제의 본질은 이러저러한 구체적인 사안들을 해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의 변화에 있다는 인식에 도달하게 된다. 저자는 오늘 우리의 선택이 유례없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부각시킨다. 너 자신, 인간 자신이 문제이고, 정말로 필요한 것은 근대적 가치관과 세계관의 변화라는 것이다. 그리고 변화에 대한 저자의 요구는 매우 급진적이다.
실제로 이 책은 땅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땅 위에서 잘 살아야 한다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과제를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개인으로서나 집단으로서나 인간은 전체 생명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다시 말해 ‘대지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이 과제를 감당한다. 실제로 이 과제는 끊임없이 땅의 이용과 남용을 면밀히 구분하는 선을 그으면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제를 감당하는 데 근대는 총체적으로 실패했다. 저자는 이 실패의 이유를 찾으면서 동시에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땅을 남용하는 근대 문화의 특징
이 책은 실패의 이유를 근대 문명 자체 안에 내장된 몇 가지 특징에서 찾고 있다. 첫째, 근대 문화는 과학적 객관성에 대한 과도한 숭배로 인해 규범적 가치를 수립하는 일에서도 과학에 의지하려 하고 환경문제에 대해 과도한 과학적 입증의 책임을 요구한다. 이것은 ‘가장 오래된 과제’를 감당하는 데 매우 불리한 여건을 조성한다. ‘가장 오래된 과제’를 감당하는 일은 일차적으로 기존의 가치와는 다른 새로운 규범적 가치를 수립하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은 과학이 할 수 있는 일의 영역을 벗어난다. 저자는 ‘대지의 공동체’ 전체를 고려하는 규범적 가치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과거 덕에 기초한 내재적 윤리나 성서의 초월적 관점에 기초한 윤리가 했던 것과 같은 역할이 필요하며, 그 역할을 과학에 기대할 수 없다고 본다. 둘째, 개인의 자율성과 권리, 사적 소유권에 근거한 근대 문화는 개인과 국가의 관계를 대립적으로 보게 만들며, 시장 영역의 비대화를 초래하고, 시민으로서의 역할이 아니라 소비자로서의 역할을 일방적으로 강조한다. 저자는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며, 가장 오래된 과제를 감당하는 데 있어서 국가와 개인을 이분법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국가의 힘을 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셋째, 근대 문화의 다른 모든 특징을 삼켜 버리는 가장 근본적인 특징이자 생태계 파괴의 근본 원인으로 저자는 자본주의 시장을 꼽는다. 저자는 자본주의 시장이 어떻게 규범적 가치와 도덕의 문제를 공적 영역으로부터 사적 영역으로 밀어내고, 가치의 문제를 개인적 선호의 문제로 바꿔 버리는지 분석한다. 마지막으로 환경 운동이 여타 시민운동과 다른 지점이 어디인지 짚는다. 여타 시민운동이 앞서 말한 근대 문화의 경계 안에 있다면 환경 운동은 근대 문화의 근본적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 평등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시민운동이 전개되어 왔다면, 환경 운동은 ‘대지의 공동체’를 규범적 가치의 근거로 삼아야 한다. 또한 다른 시민운동과 달리 환경 운동은 기업과 시장 중심주의에 정면으로 도전해야 하며, 개인의 권리의 확장을 추구하는 방식과는 전혀 다른 토대에 근거해야 한다고 한다. 환경 운동은 개인의 권리에 중심을 둔 운동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지의 공동체’를 규범적 가치로 삼아야 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땅을 남용하는 근대 문화의 특징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대지의 공동체’에 복무하는 땅의 이용 방식을 탐색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구체적인 정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대지의 공동체’에 복무하는 문화의 특징들을 이야기하며, 역사적으로 발전해 온 근대 서구 문화의 특징이 어떻게 ‘대지의 공동체’를 파괴했는지 이야기한다. 저자는 오늘날 인류가 자연과의 관계에서 겪는 위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의 정신과 감성에 급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한 변화는 몇 가지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거나 ‘지속 가능한 발전’ 같은 어정쩡하고 불명료한 개념을 내세우는 것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저자에 따르면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변화에 필적할 만한 선례는 역사상 딱 두 번 있었는데, 하나는 인류가 1만여 년 전 수렵 채취 문화에서 정착 농경문화로 옮겨 갔던 것이고, 다른 하나는 17, 18세기에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와 결합해서 산업주의적·시장적 세계관으로 옮겨 간 것이다. 저자는 오늘날 생태계 파괴라는 커다란 곤경 앞에서 인류는 이 두 가지 선례에 필적할 만한 급진적인 변화를 이뤄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한편으로 저자가 우리 앞에 놓인 변화의 과제를 유례없이 막중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의미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지난 17, 18세기 유럽과 북미 대륙에서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250여 년간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근대 문명을 1만여 년에 걸친 인류 역사 전체를 통틀어 매우 짧고 이질적이고 특이한 현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우리는 근대 세계 안에서 살아가며, 우리 자신이 거기 속하기 때문에 근대 문명을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지만, 실은 근대 문명은 자명하지도 타당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이제 생태적 위기에 직면하여 자본주의 시장 중심적 근대 문화로부터 ‘대지의 공동체’를 규범적 가치로 삼는 문화로의 급진적 변혁이 필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저자의 사상은 진정한 의미에서 탈근대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환경 운동, 기존의 시민운동 방 식에 도전하라
환경 운동은 기존의 인종차별 운동이나 성 소수자 운동 같은 시민운동보다 훨씬 심층적이고 힘든 일이라는 사실을 저자는 여러 차례 강조한다. 물론 그런 사회운동 역시 힘든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기존 세계의 틀 안에서 이뤄졌고, 근대 세계관과 그 안에 포함된 도덕성의 주요 요소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없었다. 여타 시민운동가들은 도덕 가치는 오직 인간들 사이에서만 통용되고 인간을 자율적 개인으로 보는 근대적 세계관에 근거해 있었다. 시민운동의 이슈들은 대부분 소외된 사람들이 근대 시스템 안에 더 공정하고 완벽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하는 것이었지 시스템 자체, 특히 자본주의 시장과 지배적인 권력 구조 자체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 점에서 저자는 개인의 자율성과 권리에 대한 근대적 이념에 근거해서 그것을 보편적으로 확대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는 오늘날 시민운동의 근본적 한계를 지적한다. 그러한 방식의 운동은 근대의 문제 안에 갇혀 있고, 근대의 곤경, 생태계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심화한다는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환경 운동은 시민운동보다 훨씬 더 기존의 권력 구조와 통상적인 기업들을 위협한다. 저자는 환경 운동이 본래 거대 기업과 시장 중심주의에 가장 근본적으로 도전하는 것일 수밖에 없으며,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점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늘날 환경 운동이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사람들의 즉각적인 감상이나 막연한 두려움에 호소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가령 부서진 얼음 조각 위에 위태롭게 앉아 있는 북극곰 사진 같은 것을 앞세우는 방식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그리고 환경 운동이 인간과 자연보호를 대립적으로 파악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에도 부정적이다.
저자에 따르면, 정말로 환경 운동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그동안 시민운동이 부각시킨 바로 그 도덕 기준들에 정면으로 도전해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근대적 개인의 자율성과 권리 개념에 근거한 여타 시민운동의 방식에 도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권리에 근거해서 환경문제에 접근할 때는 너무 쉽게 기존의 사고방식에 영합하게 된다. 그 경우 (권리를 소유한 자율적 개인으로서의) 인간에게만 가치를 인정하게 된다. 그러나 오늘날 자주 확인하듯이 권리 주장은 분열을 일으키며, 대립하는 권리 주장들과 충돌한다. 개인의 자유와 사적 소유가 그런 예라고 할 수 있다. 권리를 두고 다투는 것은 환경보호 반대자들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인간 중심적이고 개인주의적이며 현재에 초점을 둔― 문화적 자장 속으로 싸움터를 옮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위기 앞에서 여전히 희망을 말하는 이유
문화는 우리가 자연을 인식하고 의미 있게 구성하는 방식, 우리가 본 것을 평가하고 자연 질서 안에서 우리의 위치를 이해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저자에 따르면 그것은 우리 시대의 약점보다는 오히려 우리의 도덕 질서, 시간 이해의 틀, 우리가 영리하다는 확신과 관련이 있다. 우리의 문화적 궤적이 우리를 현재 상태로 이끌었고,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생태계의 파괴를 가져왔다. 우리가 그동안 발전시켜 온 도덕적 이상은 그러한 문제들을 포괄하지 못했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도덕 질서는 진화하며, 문화도 변화해 왔고, 지금도 변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오늘날 기후변화를 비롯한 심각한 위기 앞에서도 여전히 희망을 말한다. 그에 따르면 땅을 존중하는 문화는 실제로 가능하며, 자연을 건강하게 보고 평가하는 방법 역시 가능하다. 그리고 그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 문화의 궤도를 수정하는 운동이 필요하다. 그것은 오늘날의 시민운동들과는 전혀 다르며, 그보다 훨씬 더 큰 것을 포함한다. 이제 과거와는 전혀 다른 길을 가야 한다. 즉, 근대 문화에 거슬러 개인의 권리 확대에 기반한 운동이 아니라 ‘대지의 공동체’의 행복에 기여하는 운동을 추구해야 하며, 근대의 객관성 숭배에서 벗어나 덕을 중시하는 규범적 가치를 수립해야 하고, 소비자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시민으로서의 인간을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근대 문화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출처

국가환경교육통합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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